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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레이디 북토크](3) 명지대 교수 김정운 ‘남자를 배우다’

이윤경 | 2012-03-28

ㆍ“과묵이 남자의 표상 ?… 남자들이야말로 ‘이야기’가 필요한 존재”

한국 남자들만큼 불쌍한 존재가 없다. 열심히 공부하고 취직해 결혼하면 ‘가장’이라는 틀 안에 갇혀 먹고사는 일이 인생의 목표가 돼버린다. 나이가 들어도 변화에 잘 적응하는 아내와 달리 중년의 남자는 한없이 외롭기만 하다. 딸은 엄마하고만 친구가 되고 아들과는 갈수록 데면데면하다. 가족을 위해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고 나니 남는 것이 없다. 남자의 곁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설사 누가 있어도 할 이야기가 없다. ‘내 이야기’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남자’의 이야기를 듣기란 쉽지 않다. 시대가 바뀌어 남녀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때론 여성성을 갖춘 남성이 각광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남성들에겐 ‘가부장적’ 면모가 강요된다. 수다를 떠는 남자, 고민을 털어놓는 남자는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기도 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암묵적으로 ‘과묵함’을 남성성의 표상으로 여기는 듯하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인문교양학부)는 이런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남자다. 그는 자신을 “전형적인 한국 남자”로 소개하고 있다. 김 교수는 남자들이야말로 ‘이야기’가 필요한 존재라고 말한다. 최근 남자들의 문화심리를 다룬 신간 <남자의 물건>을 펴낸 그가 지난 20일 3월의 알파레이디 북토크에 강연자로 나섰다. 강연 주제는 ‘남자를 배우다’였다. 그는 강연에서 “한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는 바로 남자들”이라고 말했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가 지난 2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갤러리 ‘효재처럼’에서 열린 알파레이디 북토크에서 ‘남자를 배우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수다는 존재 확인의 가장 훌륭한 방법…
남자가 잘 늙으려면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야

■ 행복하면 죄의식 느낀다?


“남자들은 우리 사회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참 많이 애를 썼어요. 짧은 시간에 상당한 수준을 이뤄냈죠. 대단한 겁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경제적 풍요로움과 정치적 민주화라는 건 인간의 ‘수단적 가치’인데, 남자들은 이 수단적 가치에만 목을 맨 거예요. 그럼 ‘궁극적 가치’는 뭘까요. 바로 행복하고 재미있게 사는 겁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행복하면 죄의식을 느낄 정도로 궁극적 가치를 잃어버렸어요. 그러면서 남자들은 한국 사회의 문제가 되어버렸어요.”

김 교수는 ‘여러가지 문제 연구소’라는 독특한 이름의 연구소장이기도 하다. “행복하고 재미있는 것이 없다보니 문제들만 잘 보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모든 것을 문제로만 봅니다. 그래서 연구소 이름을 여러가지 문제 연구소로 지었어요.”

불행의 저변에는 불안함이 깔려 있다. 김 교수는 한국 남자들이 “불안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는 “불안함은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대답이 명함 말고 없는 한국 남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가 본 한국 남자들은 “행복하면 그냥 행복하면 되는데 불안한 상황이 올까봐, 불안에 대비하느라”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바로 ‘적’을 만드는 길을 택한다.

“자신의 존재가 잘 확인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적을 만드는 전략을 취합니다. 적에 대항하는 자신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하는 거죠. 한국 남자들의 근본적인 태도도 적을 분명히 하는 겁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지니까요. 한국 사회, 한국 남자들의 근본적 실체는 불안입니다. 한국 사회가 좌파·우파로 나뉘어 싸우는 것도 근본적으로 인간의 불안 문제라고 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김 교수는 남성들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적’을 확인해 나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확인하는 평화로운 방식이다. 이른바 ‘내러티브 심리학(narrative psychology)’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적 행위는 이야기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런 면에서 수다라는 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고 보면 가장 불쌍한 인간이 과묵한 인간 같아요. 존재 확인이 안되죠. 그러다보니 우울증도 잘 걸려요. 말 많은 사람은 우울증에 잘 안 걸리거든요.”

■ 내 이야기를 만들라

그는 남자들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출발은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잘 늙는 것은 자기 이야기가 풍부한 것”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 교수의 경우는 ‘만년필’이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물건’이다. “아버지를 존경하면서도 아버지의 그늘이 싫었기에, 아버지께서 쓰시던 것처럼 만년필을 모으면서 내면을 들여다보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나를 표현할 ‘물건’을 찾아보라고 제안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나를 말해주는 것을 구체적인 물건으로 표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의 새 책 <남자의 물건>에 담긴 내용도 이런 뜻이다. 그는 책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책상’,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바둑판’ 등 그 사람에게 의미 있는 구체적인 물건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전 장관의 책상은 학자의 외로움, 문 이사장의 바둑판은 묵직한 성품을 말해준다. 이렇게 구체적인 물건은 바로 그 사람을 말해주는 상징이 된다.

그는 남자들이 골프에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았다. “살면서 (골프로 인해)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할 이야기가 생기기 때문”이라는 거다. 하지만 슬픈 건 진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남자들은 ‘드라이버(먼 거리로 공을 보내려 할 때 쓰는 골프채)를 바꿨더니 10야드가 더 나갔다’고 떠들죠. 그럼 열 번 바꾸면 100야드 더 나가나요. 뭐가 더 안 나와요. 없어요. 이야기는 여기서 끊깁니다.”

‘이야기’를 위해서는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노력도 필요하다. 여자들의 이야기가 끊기지 않는 이유는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찾고 소통하려 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최근 일본에서 지내면서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어령 전 장관이 ‘자꾸 인생의 피크(절정)를 만들려는 것 아니야’라고 하더군요. 피크에 올라가면 내려오는 것밖에 없다고 하면서요. 아차 싶더라고요. 그때까지 저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 후 일본에 1년 동안 있으면서 글도 쓰고 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혼자 있으니까 곤혹스러울 정도로 시간이 너무 많은 거예요. 자전거도 타고, 혼자 맛집도 갔습니다. 외로웠지만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날씨가 좋아지니 기분이 좋고, 꽃망울이 핀 것을 보니 너무 즐겁더라고요. 이런 게 어른이 되는 건가 싶더군요. 그 후 오랜만에 한 친구를 만나니 저더러 ‘말투가 많이 느려졌다’고 했습니다. 저에게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겁니다. 이런 것이 모두 내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이날 강연에는 90여명의 알파 레이디들이 참석했다. 많은 참석자들이 남자친구, 남편, 아버지 등 주변의 ‘남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한 여성은 “환갑을 앞둔 아버지께서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한다.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방법을 물었다. 김 교수가 웃었다. “남자의 고민을 고민하는 사람조차도 남성 자신이 아니라 주변 여성이라니…한국 남자들은 정말 집안의 골치예요.”

그렇다면 구제불능인가.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결국 자기가 찾게 돼 있습니다. 너무 힘들면 살길을 찾게 되거든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재미를 추구하게 돼 있습니다. 재미를 추구하지 못하는 건 일종의 정신질환이죠. 우울한 것만 찾아내려 하는 걸 우리가 우울증이라고 하잖아요. 주변에서 과도하게 염려하지 마세요. 오히려 내 자신을 찾아갈 수 없게 만들지도 모르잖아요.”

김 교수는 “인생이 길다”고 강조했다. “제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즐거워할 수 있는 일들을 자꾸 만들어보는 겁니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식 빼고 부부가 옷을 차려입고 갈 데가 어디 있습니까. 음악회도 좋고 폼나게 옷 입고 어딘가에 갈 수 있는 이벤트를 자꾸 만드세요. 부부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인 활동, 공통의 화제를 만드세요. 나이가 들수록 이야깃거리가 쌓일 겁니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201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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